‘상암 노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가 한국 팬들의 주적이 된 것처럼 홍콩에서는 이제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의 팬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홍콩 팬들의 돌아선 팬심이 아주 무섭다. 메시는 지난 4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인터 마이애미의 프리시즌 친선 경기에 결장했다. 홍콩 프리미어리그 올스타와의 경기였는데 메시는 부상을 이유로 벤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꼭 2019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호날두에게 배신당한 한국 축구 팬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당시 호날두는 유벤투스와 함께 방한해 K리그 올스타와 친선전을 펼칠 예정이었다. 유벤투스를 초청한 대행사는 호날두가 45분 이상 뛸 것이라고 홍보했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 6만 5천석이 매진될 만큼 많은 팬이 몰렸다.
호날두는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벤치에서 출발했다. 언젠가 교체 투입돼 현란한 플레이를 펼칠 것으로 많은 팬들이 기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호날두는 투입되지 않았다. 팬들은 호날두 이름을 호명하며 짧게라도 출전을 요청했다. 그러나 호날두는 팔짱만 낀 채 무시했다. 끝내 1분도 뛰지 않은 호날두는 사과나 양해 한번 구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국내에서 호날두는 공공의 적이 됐다. 한때는 ‘우리형’이라고 불렸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호날두를 응원하려면 샤이팬이 되어야 한다.
메시도 마찬가지다. 메시를 보기 위해 몰린 홍콩 팬들은 4만 석 홍콩 스타디움을 가득 메웠다. 당연히 메시가 나설 줄 알았다. 사전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메시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벤치에 앉아있을 뿐 출전하지 않았다. 인터 마이애미는 주최 측과 계약하면서 메시가 45분 뛰는 의무 조항을 포함시켰다. 노쇼를 애초에 차단하려는 계획이었다.
소용 없었다. 메시 측에서 “메시가 뛸 수 없다”는 통보를 불과 경기 시작 15분을 남겨두고 전했다. 이유는 햄스트링 부상이었다. 메시는 호날두와 달리 부상이 확실하다. 홍콩으로 넘어오기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 나스르를 상대할 때도 종료 8분 전에야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랬다가 부상 정도가 더 심해졌다. 타타 마르티노 인터 마이애미 감독은 “많은 팬이 실망했다는 걸 알지만, 용서를 구한다. 잠깐이라도 뛰게 할까 했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라고 말했다.
이어 “메시를 기용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매우 늦게 내려졌다. 클럽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출전시키지 않았다. 메시와 루이스 수아레스의 부재에 팬들이 보여준 반응을 이해한다”면서 “그러나 우리 의료진과 상의하고 내린 결정이다. 메시는 허벅지 내전근에 염증이 있다. 나아지길 기대했지만 며칠째 악화되고 있다. 수아레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경기 도중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팬들이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당연히 메시가 나설 줄 알고 4만석의 경기장이 팬들로 가득찼다. 화가 난 홍콩 팬들은 경기 종료가 다가오자 “환불”을 연호했다. 메시를 내세운 홍보물에 발차기를 해 머리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홍콩 정부까지 나서 “행사 주최자는 메시 결장에 대해 팬들에게 해명해야 한다. 정부와 팬들은 행사 주최 측에 상당히 실망했다”며 “스포츠이벤트위원회는 메시가 뛰지 않은 만큼 행사 추최 측의 후원금 공제와 관련해서도 후속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고 태틀러 아시아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메시는 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인터 마이애미는 오는 7일 일본 J1리그 비셀 고베와 친선전을 펼친다. 메시가 홍콩에서 뛰지 않았기에 몸상태는 물론 노쇼도 큰 관심을 모았다.
메시는 고개를 숙였다. 일본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홍콩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경기를 뛰다 다쳤다. 어떻게 해서든 뛰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검사 결과 부상이 확인됐다. 의료진이 출전을 막았다”며 “난 홍콩에서 뛰고 싶었다. 조만간 다시 홍콩에서 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홍콩 팬들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일본 매체 ‘스포츠호치’는 “메시의 일본 기자회견에 홍콩 팬들이 삐딱한 자세로 지켜봤다. 홍콩 팬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매체가 모은 홍콩 팬들의 부정적인 댓글을 보면 ‘수아레스, 마르티노, 데이비드 베컴 등이 불참한 기자회견에 메시는 참석했다’, ‘메시가 일본에서는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홍콩에서는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주머니에 손을 넣고 표정도 싸늘했다’, ‘홍콩은 물론 중국도 메시가 고베와의 경기에 출전할지 예의주시할 것’ 등으로 쌍심지를 켠 모습을 보여줬다.